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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희망이 되어야지’ - 양용성 (주)체커 개발이사 (하)

DATA 인터뷰
작성자
dataonair
작성일
2019-11-15 00:00
조회
2687


데이터인 인터뷰: 양용성 (주)체커 개발이사 (하)

‘내가 먼저 희망이 되어야지’


체커는 DB 개발·관리 도구인 ‘SQLGate’를 시작으로 데이터 분석·시각화·보안 기능을 제공하는 ‘쿼리파이’ 등을 속속 선보이며 사업 영역을 빠르게 확장해 나가고 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투자금 유치, 세계적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인 ‘와이 콤비네이터’에 선정되는 등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체커의 주력 제품인 SQLGate는 현 기술담당 양용성 이사의 작품이다. 양 이사는 현재 제주 서귀포에서 살면서 서울 본사의 SQLGate 개발팀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행 비행기 탑승 시간을 한 시간 반 남겨 둔 그를 마곡동 체커 사무실 근처에서 만났다. SQLGate 개발부터 제주도로 내려간 사연, 가정사, 현 체커팀에 합류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박세영(글봄크리에이티브, sypark@mustr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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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용성 체커 SQLGate 개발이사


“제 얘기요? “SQLGate를 내놓기까지 두어 번 실패도 했어요. 꽤 많은 빚을 져서 허덕이기도 했고요. 제가 생각보다 단순한 면이 있어요. 2012년, 제주도에 내려간 것도 저의 이런 단순한 면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제주에 내려가면 우리 아들이 좋아하겠네. 그럼 회사는 어떻게 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저질렀지요. 체커를 설립하여 SQLGate를 내놓을 때도 그들과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어요.”


‘크게 성공해 보지 못한 게 다행’

“제가 서울 생활을 할 때 스트레스가 꽤 심했어요. 그러다 보니 일이 끝나면 술 마시고 아침 식사를 거르다 보니 몸무게가 늘면서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60킬로 중반대인데 한때 몸무게가 80킬로를 훌쩍 넘었어요.”

“실패도 해봤고 돈도 조금은 만져봤습니다. 돈을 벌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겸손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그럼 주변의 사람들이 떠나고 외로워집니다. 저는 크게 성공해 보지 못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세 가지 꿈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 꿈 세 가지가 있었어요. 내 손으로 CD로 패키징된 소프트웨어를 내놓겠다, 30세가 되기 전에 과장으로 승진하겠다, 힘들지 않을 만큼 돈을 벌겠다, 였어요. 정말로 30세가 되기 전에 그 꿈이 모두 이뤄졌어요.

“전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당시 부모님께서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하면서 어렵게 생활하시던 때였어요. 부모님을 도와 드리는 일이었지만, 그때 내 힘으로 돈을 번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물론 힘들었지만요. 군 제대 후에 잠시 부모님 생선가게에서 일했는데, 중학생 때보다 훨씬 (장사를) 잘하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제 모습을 보시더니 ‘취직하지 말고 여기서 생선장사 하자. 잘하면 1년이면 집 한 채 살 정도로 벌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렵게 저를 가르치셨는데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살라고 그러셨던 건 아니잖아요!’ 하고 거절했어요.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개발자의 삶

“사회 생활 또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대학 3학년 2학기 때, 지도교수님께서 제게 ‘한 달 동안 복사 열심히 하고 시키는 일 잘 하고 오라’고 했어요. 양재동의 한 개발사였는데, 거기서 개발자들의 리포팅 결과물을 넣을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어요. 한 달에 50만 원을 받는 조건이었지요. 한 달 후에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급여가 적어서 그러느냐?’며 100만 원으로 올려주겠다는 겁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러겠다’고 답하기가 속보이는 거 같아서 ‘원래 한 달만 일하겠다고 했으니 가겠다’ 하고 다시 말했던 거 같아요. 그랬더니 한 달에 150만 원을 줄 테니 두 달 동안 일을 더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함께 일했던 대리보다 많은 월급이었어요.”

“그에게 ‘대리님이 받는 월급보다 제가 더 많이 받는데, 이래도 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네가 나가면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누가 하냐?’고 하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일시적으로 기술 인력을 쓰려면 많은 돈을 줘야 하는 것도 알게 됐죠. ‘기술력을 갖추면 내 가치를 올릴 수 있겠구나’ 하는 걸 몸소 체험했지요.”

“그때부터 새로 나오는 기술은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인터넷으로 공유했던 거 같아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ASP를 내놓았을 때, 영문 자료를 읽으며 며칠 파고들었어요. 공부했던 결과를 올리면, 매우 좋은 조건으로 개발 제안이 들어오더라고요.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제가 꿈꿨던 일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27세라는 조금은 이른 나이에 창업했던 거지요.”


‘헬리콥터여도 좋으니 일단 날고 싶었다’

“SQLGate를 전 세계의 개발자들과 DB 관리자들이 쓰는 제품으로 키우는 겁니다. 지금은 난관을 헤쳐나가는 중이고요. 1990년대 말, 벤처기업 열풍이 불었을 때 창업 커뮤니티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어요. 그때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여성 전용 포털, P2P 서비스나 DB 보안 솔루션을 내놓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서 스스로 일어섰던 때였지요. 알고 지내던 대표들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제 사무실에 찾아오는 거예요.”

“`찾아오지 마라, 힘들게 일하고 있는 나를 약 올리려고 그러냐?` 하면서 오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어요. 그때 한 대표가 제게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지금, 양 대표가 만들고 있는 것은 너무나 큰 비행기여서 그 비행기를 띄우려면 길고 넓은 활주로가 필요해. 그 활주로를 닦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헬리콥터여도 좋으니 일단 날고 싶다’고 했어요^^”


내가 먼저 희망이 되어야지

“그 대표가 했던 말처럼 계속 활주로만 열심히 닦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내 비행기를 내 활주로에서 날게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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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위로를 받고 싶으면 먼저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30대는 행복의 척도로서 많은 돈을 꼽는다고 하잖아요. 40대를 거쳐 50대는 의지할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감이 높다고 하고요. 내 직장에 내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 순간, 그럼 날 의지하고 싶어 하는 동료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제 바람이 너무 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위로를 받고 싶으면 먼저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데이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질문하는 경우도 많고요. 개발자에서 DB 영역으로 진입한 경우이므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거 같아요. 그 경험을 글로 한번 풀어보고 싶습니다.”

●● 제주 비행기 탑승을 앞둔, 1시간 남짓의 양 이사와의 인터뷰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짧은 시간에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숨김도 자랑도 없이 진솔하다고 느끼게 했다. 양 이사가 스토리를 담아 DBGuide.net에 ‘양용성의 DB 개발자 이야기’를 연재한다. (끝)


출처 :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제공 : 데이터 온에어 Dataonai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