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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야도 농부처럼 밭 일구는 과정 필요해” -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NewSQL 전도사, 이은철 (상)

DATA 인터뷰
작성자
dataonair
작성일
2018-04-26 00:00
조회
2051


“데이터 분야도 농부처럼 밭 일구는 과정 필요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NewSQL 전도사, 이은철 (상)

- 선수나 비즈니스나 도전의 연속인 것은 마찬가지
- 소년-소녀가장 돕는 복지재단 만들고 싶어
- 1970년대부터 프로그램에 눈뜬 개발자 1세대의 사격선수
- 올림픽 우승을 계기로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의미에 눈을 뜨게 되다
- 추락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은 공든 탑을 쌓을 기회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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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 클러스트릭스(Clustrix) 아태지역 대표


우리는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찾아서 살라’는 말을 자주하고 듣는다. 그만큼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나도 찾기 어려운데 운동과 IT 영역에서 재능을 발굴해 눈에 띌 만한 실적을 달성한 주인공인 있다면 그는 분명 복 받은 이가 아닐까.
그 주인공은 이은철 클러스트릭스(Clustrix) 아태지역 대표다. 이 대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50m 소총 복사 종목에서 금메달의 주인공이자 글로벌 IT 기업의 지사장으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대표는 리얼타임 운영체제(RTOS) 전문업체 ‘윈드리버’ 입사를 시작으로 IT 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100억 원 매출을 돌파했던 IT 벤처기업도 설립-운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데이터 분석 시스템 공급업체인 트레저데이터(Treasure Data) 한국 지사장을 거쳐 지난해(2017년) 4월부터 클러스트릭스(ClustrixDB)라는 NewSQL 공급업체 아태지역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이은철 대표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데이터와 국가대표 선수 출신 IT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박세영(글봄크리에이티브 대표, sypark@mustree.com)

“올림픽 금메달은 실력으로만 딸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특히나 사격은 실력뿐 아니라 그날 몸 상태와 바람 등 환경에 크게 좌우됩니다. 실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그날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보증을 하지 못해요.”

사격이나 골프 등은 실력이 뛰어난 선수 30명이 금메달을 놓고 겨룰 때, 40명 정도의 선수가 예선전을 치른다.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는 것도 어렵지만, 40명의 선수들이 다시 본선 진출을 놓고 겨루는데 이들 중 10명 정도는 이미 세계대회 우승을 경험해 본 이들이다. 우승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힘으로 하는 종목이 아닌, 쌓아온 실력으로 하는 종목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으므로 뛰어난 선수들은 계속 늘어나는 특징이 있어요. 이렇다 보니 금메달을 따는 것도 행운이지만, 올림픽에 몇 번 참가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도 하지요.”


사람은 어떻게 단련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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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올림픽 금메달을 걸고 환호하는 모습


이 대표는 다섯 번이나 국가 대표로 올림픽에 참여했으니 자신의 업적에 대해 의미를 둘 만도 하다. 그런 그에게도 시련은 빨리 찾아왔다. 사격 유망주로 기대를 받고 고등학생 때인 1984년 미국 LA 올림픽부터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첫 출전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4년 후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출전 기회마저 놓쳤다. 8명의 대표를 뽑는 자리에서 9등을 한 것이다. 추락했다고 생각한 그 젊은 선수는 자괴감에 빠져 은퇴까지 선언했다.

“그때 너무 큰 좌절감을 맛봐야 했어요. 마음의 도피처를 찾던 중 은퇴까지 선언한 거죠. 86년부터 88년까지 모든 유혹을 뒤로하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고 생각했으니 그때 그 상실감은…. 실패의 쓴맛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20대 초반의 나이에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요.”

젊은이들이 느낄 만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태릉 선수촌 근처의 불암산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오르내리는 삶을 3년 정도 살았다.

“시합에서 보통 120발을 쏘는데, 준비 기간에는 하루에 300발을 쏘았어요. 시합을 한 번 하면 몸무게가 2~3kg이 줄어요. 그만큼 집중력이 필요하죠. 금메달이 목표였고 너무나 간절하게 따고 싶었는데 메달은 커녕 출전 기회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던 거죠.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우쭐대던 제가 겸손해질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중학교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흥미 느껴

1988 올림픽 국가대표전 탈락 전까지는 큰 어려움이 닥쳐도 하늘에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88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지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도 마셔보았다. 20대 초반이었는데 마치 인생 실패자나 낙오자가 된 것처럼 느껴져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그 고통을 잊게 해준 게 컴퓨터였다.

이 대표는 박사 학위를 받으러 유학을 떠났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 갔을 때가 중학교 1학년인 1980년이었어요. 그때 그곳 중학교에는 개인별로 실습할 수 있는 컴퓨터실이 있더라고요.”

그는 컴퓨터의 매력에 바로 빠져들었다. 사격뿐 아니라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면서 만들던 프로그램에도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때를 계기로 어셈블리, 파스칼, 코볼, 포트란, 베이식, C 언어에 이르기까지 세대별 컴퓨터 언어를 하나씩 배워 나갔다. 그곳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사격 선수로 활동하면서도 대학(미국 텍사스루스런대 컴퓨터공학과)에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88년에 은퇴하겠다고 미국으로 돌아가 1990년까지 1년 반 동안 컴퓨터 공부에 집중했어요. 대학 1, 2학년 때만 해도 그저 그랬던 성적이 3학년 들어서면 전 과목에 걸쳐 A를 받다시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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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밭을 일굴 수 있는 사람

공부에 맛을 들여가고 있을 무렵인 1990년, 조건 없이 국가 대표로 사격 선수단에 합류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기에 다시 소총을 들었다. 그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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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선수단에 재합류하고 출전했던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두 개를 목에 걸었다. (출처: imbc.com 화면 캡처)


“세상일이라는 게 생각한 대로 이뤄지지 않더라고요. 88년 대회만큼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도 금메달의 영광이 주어졌어요. 감사할 일이죠. 이때를 계기로 어떤 일이든지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쏟았던 노력만큼 결과가 안 나올 수 있지요. 좋은 결과가 나오려면 시련도 꼭 함께 오더라고요.”

금메달도 따고 총 다섯 번의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도 쉽지 않았다. 전공을 살려 IT 분야로 취업했다. 대학 성적이 발판이 되어 글로벌 실시간 OS(RTOS) 업체인 윈드리버(Wind River Systems)에 입사했다. 그때가 2002년.

“첫 직장에 들어갈 때 대학 추천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미국 대학들은 상위 30명 정도의 학생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글로벌 IT 업체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었어요. 88년 국가 대표 탈락이 오히려 제게는 도움이 된 거죠.”

첫 직장에서 1년 정도를 일했다. 그때 한국 고객사들이 어떤 장비를 개발 중인지를 하나하나 들을 수 있었다.

“고객 측에서 개발중인 보드를 가져오면 그것을 놓고 얘기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하드웨어 제어 프로그래밍을 했으므로 RTOS에서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죠.”


데이터 분야는 축적기간 필요해

이 대표는 한국에 처음 진출한 업체의 국내 지사장 경험도 풍부하다. 고객을 유치하기 전까지는 세미나를 열고 주로 사람과 만나는 데 집중한다. 이 과정이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전에 하는 밭 일구기와 같다고 여긴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씩 쌓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어려운 기간을 극복했다.

“저는 농부처럼 밭을 일구는 데 강한 거 같아요. 사격 선수로 활동할 때, 수많은 유혹을 누르고 오로지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향해 집중했던 경험이 작용한 것이지 싶어요. 농부는 씨앗을 뿌리기 전, 밭을 갈고 퇴비를 쳐서 작물이 잘 자라도록 땅을 일구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거예요.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의 한국 지사장을 하면서는 밭을 일구는 것뿐 아니라, 동시에 결실도 거둬야 했어요. 쉽지 않죠. 먼저 기반을 다져 놓은 곳에서의 비즈니스는 쉬울 수 있어요. 그것마저 없을 때는 마음을 다칠 수 있어요. 특히 해외 사례는 많은데 현지 사례가 없을 때는 훨씬 어렵더군요.”

현재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을 더했을 때 어떤 이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미래의 고객 스스로가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공급사인 트레저데이터(Treasure Data) 한국 지사장으로 있을 때는 데이터 분석에 대해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하면 당장 적용할 만한 답이 안 나오는 게 90% 이상이죠. 그나마 당장 활용할 만한 인사이트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 마케팅 쪽일 겁니다. 정말로 힘이 되는 인사이트는 바로 나오지 않고 연구와 축적 기간이 필요합니다.“ (다음 회에 계속)


출처 :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제공 : 데이터 온에어 Dataonair.or.kr